[월드 프리즘]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공상의 역사
[월드 프리즘]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공상의 역사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1.05.04 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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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열기구부터 텔레파시까지…화성의 생명체와 대화를 시도하려던 무수한 시도들
미국 화성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가 지난 2월 20일 찍은 화성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화성 탐사 로버 ‘퍼서비어런스’가 지난 2월 20일 찍은 화성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화성에 생명체가 살고 있을까?’라는 의문은 여러 시대를 관통하던 궁금증이었다.

하지만 하늘을 쳐다보던 수천 년 전 고대인들의 관심에서부터 화성에 직접 우주 헬리콥터를 띄워 관찰할 수 있게 된 오늘날까지 이 ‘붉은 행성’의 생명체 존재 여부는 명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그래도 화성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지 여부는 현대인들의 최대 궁금증 중 하나이다. 인류가 화성에 정착하겠다는 꿈을 꾸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화성에 운하가 존재한다는 주장부터 화성의 생명체와 무선으로 통신한다는 주장까지 그동안 화성 생명체와 관련한 인류의 주장들을 살펴본다. 그 중에는 화성의 여자친구와 소통하고 있다는 주장도 포함된다.

화성 운하와 생명체에 대한 초기 주장들

화성은 고대 문서에서는 종종 불의 행성, 즉 ‘화성(火星, fire star)’ 또는 전쟁의 신으로 표현되곤 했다. 인간이 초기의 조잡한 망원경으로라도 화성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는 17세기였다.

그러나 천문학자들이 화성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좀 더 강력한 망원경이 등장할 때까지 기다려야했으며, 그때부터 화성 생명체에 대한 주장들이 꽃을 피기 시작했다.

1877년 이탈리아의 천문학자 조반니 스키아파렐리는 화성 표면을 덮고 있는 가로세로 무늬들을 포착했다. 그는 이 무늬들을 통로를 의미하는 ‘카날리(canali)’라고 불렀다. 스키아파렐리는 이 무늬들이 화성 생명체의 작품이라고 확신하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카날리(canali)’는 운하(canal)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성에 운하들이 있다면 지적 생명체가 건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대두되게 되었다. 결국, 많은 사람들은 화성 표면의 가로세로 선들은 화성이라는 행성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물길(운하)들이라고 믿게 되었다.

이런 주장은 자연스럽게 화성에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엔지니어들일 것이라는 추측을 동반하게 되었다. 지구에서는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건설되는 데 무려 10년이나 걸리던 시기였다. 당연히 화성인들의 놀라운 성취가 인류의 기술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주장이 뒤를 이었다.

퍼시벌 로웰도 당연히 그런 생각을 품고 있었다. 1894년 이제 막 천문학에 입문한 그는 화성 운하라는 주장을 확대시켜 나갔다. 그는 가족의 재산을 팔아 애리조나 주 플래그스태프에 로웰 천문대의 문을 열었다.

로웰은 자신이 화성의 표면에서 관찰한 내용들을 지도로 꼼꼼히 그렸으며, 많은 책들을 펴내기도 했고, 여러 차례 강연을 통해 화성인들이 죽어가는 행성을 살리기 위해 관개시설을 건설했다는 놀라운 주장을 펼쳐나갔다.

로웰은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지구상의 생명체가 존재하는 방식을 예로 들기도 했다.

“지구의 깊은 바다 바닥에는 아무런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해저탐사선이 개발되었다. 해저탐사선이 드디어 해저를 관찰하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곳에는 무수한 생명체들이 존재함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어류, 갑각류, 연체동물, 극피동물 등 원형질의 분자생물부터 해양 괴물까지, 온갖 종류의 생물들이 심해에 살고 있음이 밝혀지지 않았는가? 화성이라고 그렇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화성 지도를 만드는 일도 원대한 구상이었지만, 과학자들은 곧이어 존재할지도 모르는 화성인들과 직접 접촉을 시도하고 나섰다.

로웰 천문관측소에서 관측 중인 퍼시벌 로웰 [출처=위키미디어]
로웰 천문관측소에서 관측 중인 퍼시벌 로웰 [출처=위키미디어]

붉은 행성에 손 내밀기

1899년 화성 생명체에 대한 주장은 저명한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에 의해 날개를 달았다. 당시 에디슨과 견줄 정도로 성공한 전기공학자였던 테슬라는 화성으로부터 날아온 ‘이해할 수 없는 희미한’ 신호를 포착했다고 주장했다.

테슬라는 콜로라도스프링스 파이스피크의 높은 고도에 건립한 대형 전송기를 운용하면서 ‘멀리 떨어진 미지의 또 다른 세계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 메시지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었을까? 테슬라는 그것이 단순히 ‘원, 투, 쓰리’라는 내용이었다고 밝혔다.

몇 년이 흐른 뒤인 1901년 2월 발명가 테슬라는 잡지 ‘주간 콜리어’와의 인터뷰에서 화성의 특정 지역에 정확히 무선 신호를 보냄으로써 화성인들과 접촉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매우 의미심장한 주장이었다. 지구상에서는 그해 12월까지는 어떤 무선통신도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테슬라는 외계인들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몰랐지만, 그들이 화성의 척박한 환경에 잘 적응해서 살고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도, 퍼시벌 로웰처럼, 지구의 위성인 달과 같이 극한의 행성일지라도 외계인들은 지표면이 아니면 지하에서라도 존재한다고 믿었다.

많은 사람들은 화성으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면 거꾸로 지구에서 화성으로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다.

1909년 화성의 생명체와 접촉하려는 몇 가지 시도들이 이뤄졌다.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윌리엄 헨리 픽커링은 50개의 거대한 거울들을 늘어놓고 반사되는 빛을 통해 화성에 신호를 보내자고 주장했다.

거울들에서 반사된 섬광은 몇 년간 지속됨으로써 화성인들이 이에 대응하는 신호를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줄 터였다. 픽커링 교수는 “만일 화성으로부터 신호를 받을 수 있다면 화성인들이 존재할 경우 그들도 지구인들처럼 눈이 있고 망원경 등을 보유하고 있다는 가정을 입증하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픽커링 교수의 제안이 실행에 옮겨지려면 1000만 달러가 필요했는데, 아무도 돈을 대려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로버트 우드라는 존홉킨스 대학 교수가 등장했다. 그는 네바다의 알칼리성 광야지대를 4평방마일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천으로 덮어, 검은 점들로 신호를 보내자고 제안했다.

“대형 천으로 검은 점들을 만들어 같은 크기의 거울과 같은 신호를 보내는 것이 더 쉬운 방안일지 모른다.” 그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우드의 제안도 픽커링의 그것처럼 돈을 대겠다는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좌절됐다.

그런가 하면 암허스트 대학의 데이비드 토드라는 다른 교수도 열기구를 5만 피트 상공에 띄워 화성인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화성인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지구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지구인들이 이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토드 교수는 그해 9월에 예정된 자신의 계획 실행을 앞두고 5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토드 교수의 계획은 5000피트를 오르는 데서 끝이 났다. 그의 계획을 뒷받침하기로 했던 육군성이 갑자기 지원을 중단해버렸기 때문이었다. 이 과학자는 망연자실한 채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화성으로부터 신호를 수신했다고 주장한 니콜라 테슬라 [출처=위키미디어]
화성으로부터 신호를 수신했다고 주장한 니콜라 테슬라 [출처=위키미디어]

화성인을 사랑했던 한 변호사의 이상한 제안

화성인과 소통하기 위해 무선통신, 대형 거울, 열기구, 심지어는 검은 천으로 점들을 만들어 신호로 활용하자는 주장들은 적어도 과학계의 지지를 받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1926년 10월 27일, 런던에서 활동 중이던 한 변호사는 3500마일이나 떨어진 화성에 전보문을 직접 보내려고 했다. 그는 화성에 자신의 화성인 여자친구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도 했다.

휴 맨스필드 로빈슨 박사는 여자친구가 자신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당시 화성은 2년 걸리는 공전궤도 중 지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그는 183센티미터 크기의 ‘우마루루’라는 화성인 여자친구와 텔레파시로 대화를 나눠왔다고 주장했다.

로빈슨 박사에 따르면 우마루루와 그녀의 화성인 친구들은 차를 몰고, 담배를 피우는 등 지구인들처럼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 전기로 재배한 나무에서 과일을 따서 먹고 살았다.

로빈슨은 화성인 여자친구에게 실제로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전송 몇 달 전부터 ‘런던 중앙 전신국’에서 작업을 했다. 놀라운 것은 ‘중앙 전신국’ 측이 당시 가장 강력한 신호를 보낼 수 있었던 ‘럭비 타워’에서 전보문을 보내는 데 동의했다는 사실이다.

결국 전신국 직원들이 화성으로부터 어떤 신호도 포착하지 못하자 로빈슨 박사는 우마루루로부터 텔레파시로 신호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우마루루는 로빈슨에게 화성인들이 몇 시간 동안이나 잠도 자지 않고 신호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화성인들은 지구 과학 수준을 비웃었다고 한다. 그들은 신호를 주고받는 데 대기상의 문제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는데 지구인들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휴 맨스필드 로빈슨 박사는 화성의 여자친구가 자신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당시 이를 보도한 1926년 10월 29일의 '이브닝 스타'지 기사 제목 [출처=의회도서관]
휴 맨스필드 로빈슨 박사는 화성의 여자친구가 자신의 메시지를 받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당시 이를 보도한 1926년 10월 29일의 '이브닝 스타'지 기사 제목 [출처=의회도서관]

오늘날의 화성 생명체 탐사

로빈슨 박사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이전시대 과학자들의 주장에는 억지가 많았지만 그들의 호기심과 열정은 이후 세대의 영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1976년 나사(NASA)는 두 대의 바이킹 착륙선을 통해 화성 생명체 탐사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착륙선들 중 한 대가 실시한 대사반응 실험은 어느 정도 긍정적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일종의 유기체들이 화성 토양 샘플에 스며든 영양분을 흡수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붉은 행성의 생명체 가능성을 밝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실험 결과들은 오늘날까지도 논란을 낳고 있다.

이어지는 화성 탐사 로버(rover)들의 활동으로 화성이 한때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했던 곳이라는 증거들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2012년 착륙한 ‘큐어리오서티(Curiosity) 로버’는 붉은 행성의 게일 분화구(Gale Crater) 중심부에 위치한 마운트 샵(Mount Sharp)라는 산을 탐사했다.

이 산의 1만6000피트의 높이는 오랜 시간 풍화작용으로 생성된, 다른 광물질로 구성된 퇴적암층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들 중 두 원소들은 대기가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과학자들은 화성에 대기가 존재했다면 수십억 년 전 이 퇴적암층이 형성되는 동안 미생물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믿고 있다. 화성에 약 1백만 년 동안 생명체가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가장 최근에는 2020년 7월 30일 나사의 ‘퍼시비어런스(Perseverance) 로버’가 지구를 출발, 2021년 2월 18일 화성의 터치다운에 성공했다. 만일 화성에서 어떤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미생물 수준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 정도만이라도 한때 우리가 찾고자 했던 운하를 건설한 화성인 못지않은 발견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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