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뉴욕타임스가 소개하는 ‘미나리’ 윤여정의 성공스토리
[월드 프리즘] 뉴욕타임스가 소개하는 ‘미나리’ 윤여정의 성공스토리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1.04.0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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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꿈꾼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의 삶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윤여정의 ‘미나리’ 열풍이 드디어 미국배우조합 상(SAG Awards)을 수상하고 이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가운데 뉴욕타임스가 배우 윤여정과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한국의 원로배우 윤여정은 60세가 되던 해에 스스로 다짐한 바가 있다.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일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녀는, 거창한 영화가 아니더라도,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을 자신이 존경할 수만 있다면 결과는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수십 년 동안 경험한 자유롭지 못했던 선택의 폭과 직업에서 얻은 상처를 자양분으로 늦은 나이에 얻게 된 이 같은 철학은 마침내 윤여정을 ‘미나리’라는 영화로 인도하게 되었다. ‘미나리’는 미국으로 이민와서 아칸소 주에서 뿌리를 내린 한국계 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리 이삭 청(한국명 정이삭) 감독의 반자전적 영화이다.

윤여정은 이민 역사를 포근하게 그린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역으로 나와, 달콤씁쓸한 연기를 펼쳐, 한국 여배우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73세의 아시아 여성인 내가 오스카 후보에 오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입니다.”

윤여정은 서울 그녀의 자택에서 가진 비디오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미나리’는 내게 너무 많은 선물을 주고 있습니다.”

그녀는 현재 맞고 있는 영광스러운 순간들과 과거의 역경들을 사려 깊게 설명하면서 가끔씩 상냥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때로는 큰소리로 웃기도 했다.

수수한 블랙탑 차림에 긴 목걸이를 찬 조용한 여배우의 모습에서는 공들이지 않은 우아함이 배어나왔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고, 배려심을 가지고 기자를 대했지만, 자신의 생각을 설명할 때는 단호함이 엿보였다.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 도중 그녀는 정확한 영어식 표현을 위해 카메라 밖의 조언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

그녀는 공동출연자인 스티븐 연(한국명 연상엽)이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이제 때가 되었다! 그 말밖에 못하겠네요. 한국계 배우들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생충’의 성공이 결정적 도움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비영어권 영화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최우수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이 사실은 다른 방식으로 윤여정의 오스카 후보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윤여정은 최근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애플사의 TV 드라마 ‘파친코(Pachinko)’를 찍고 귀국하는 참에 오스카 후보에 오른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곧바로 한국 언론들의 보도가 홍수를 이루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들은 내가 무슨 축구선수나 올림픽 선수라도 되는 양 취급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압박감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봉 감독의 성공 때문에 나도 그럴 것이라고 여깁니다. 나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다 당신들 때문이야!’라고”

봉준호 감독은 김기영 감독의 1971년 작품 ‘화녀’의 팬이다. 윤여정은 이 영화를 통해 장편 데뷔를 했다. 봉 감독은 특히 윤여정이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기간 동안 수상 후보에 오른 사실을 부러워했다.

“그는 내게 ‘어디 가지 않고 그냥 집에 앉아서 줌 프로그램으로 인터뷰를 할 수 있으니 선생님은 얼마나 행운인지 모르실 겁니다. 미국에 가면 수상 레이스가 기다리고 있고, 안가는 곳 없이 여기저기 끌려 다녀야하거든요.’라고 말했어요. 그런 강행군은 말한테나 어울리는 거지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윤여정은 현재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5일(한국시간) 오전 온라인으로 진행된 제 27회 미국배우조합 시상식(SAG Awards)에서 영화 '미나리'로 한국배우로는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그녀는 또 이번 달 말 진행될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Independent Spirit Award)’에도 수상 후보에 올라있다. 그리고 그녀는 ‘미나리’로 이미 비평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여러 상들을 수상한 바가 있다.

영화 ‘미나리 한 장면 속 출연진. 왼쪽부터 스티븐 연, 앨런 S. 김, 윤여정, 한예리, 노엘 게이트 조. [판씨네마 제공]
영화 ‘미나리 한 장면 속 출연진. 왼쪽부터 스티븐 연, 앨런 S. 김, 윤여정, 한예리, 노엘 게이트 조. [판씨네마 제공]

이 같은 성과들은 한국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50년 넘게 활동해온 그녀 업적의 최근 결과물들이다. 그녀는 최근에는 요리를 다룬 리얼리티 쇼인 ‘윤스 키친’과 게스트하우스를 무대로 펼쳐지는 논픽션 시리즈 ‘윤스 스테이’에 출연 중이다. 그렇지만 독학으로 연기를 배운 배우 윤여정은 젊어서 스스로 배우를 꿈꿔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세계적 명성 획득은 적어도 자기 스스로에게는, 지금까지의 여정에서와 마찬가지로, 뜻밖의 행운처럼 느껴진다.

“당혹스럽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했고, 극장에 가기를 즐겼어요. 하지만 내 경우에는 그저 우연한 사건이 계기가 된 것입니다.”

1960년대 윤여정이 10대였을 때 어린이 프로그램의 한 사회자가 그녀가 방송국에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방청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일을 시켰다.

“그 일이 끝나고 돈을 받았는데, 꽤 큰돈이었어요.”

그 뒤로 비슷한 일들이 몇 번 이어진 뒤 한 연출자가 그녀에게 어떤 드라마의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했다. 그녀는 망설였지만 당시의 상황 때문에 그 제안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대학입시에 낙방하는 바람에 어머니의 실망이 매우 컸기 때문이었다고, 그녀는 말했다.(이 이야기가 화제가 되자 그녀의 측근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그녀는 입시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성적이 너무 저조해서 일류대학에 지원할 수 없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연기가 무엇인지도 몰랐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대본을 줄줄이 암기하고,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만 했습니다. 당시에는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몰랐어요.”

그러나 그녀는 1970년대에는 상승세에 접어들었고, 그러다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남편의 유학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 플로리다 행을 선택했다.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난 두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정주부로 거의 10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홀로 키우는 싱글맘 신분으로 한국으로 귀국했다. 하지만 그녀의 배우로서의 명성은 이미 사라진 뒤였고, 한국 내의 뿌리 깊은 성차별문화 또한 그녀의 복귀에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했다.

“시청자들은 ‘저 여자는 이혼녀인데 왜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냐’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회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지금은 팬들이 저를 무척 좋아해서 저는 그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차피 인간사는 다 그런 거니까요.”

그녀는 아들 둘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어떤 배역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60대에 접어들면서 자식들의 부양 의무가 사라지자 그녀는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투자하기로 결심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 홍상수 감독이 있다. 홍 감독은 너무 많은 신을 찍자고 해서 그녀를 화나게도 한다. 또, 임상수 감독도 있다. 임 감독은 그녀 나의의 한국 여성 배우에게는 듣도보도 못한 배역을 던져주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2013)’에서 윤여정은 젊은 남자 비서를 성추행하는 강인한 여성으로 나온다.

윤여정의 절친인 연출자 이인아가 ‘미나리’의 감독 정이삭에게 부산영화제에서 윤여정을 소개했다. 정 감독도 봉준호 감독처럼 영화 ‘화녀’에 나온 윤여정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정이삭에 대해 좀 더 알고자 했다.

“지금은 이 사실을 두고 사람들이 나를 놀립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정 감독이 너무 조용한 사람이라 내가 그에게 흠뻑 빠져버렸거든요. 나는 그가 내 아들이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많아요.”

정이삭 감독은 이메일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녀는 뜻밖의 놀라운 무엇을 지니고 있습니다. 저는 그녀가 살아온 삶이 제가 쓴 글과 무척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한국에서 윤여정이라는 배우는 마음이 넓고, 태도가 깔끔하기로 이름이 나있기 때문에 그런 자신의 장점을 ‘미나리’에서 살려, 관객을 끌어드릴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고 덧붙였다.

정치와 문화 뉴스를 다루는 매체 ‘더 네이션’에 평론을 기고하는 비평가 크리슨 윤수 킴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윤여정은 각광을 독차지했다. 희화적으로 흐르는 경우에도 순자라는 그녀의 배역은 영화에 꼭 필요한 유머와 활력을 제공한다. 그녀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자칫하면 우울하고 어두운 영화로 빠져들 수도 있었다.”(킴 비평가의 영화평은 뉴욕타임스에도 등장한다.)

윤여정은 ‘미나리’ 대본을 처음 대했을 때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겪은 역경과 그러한 삶이 단순히 하나의 정체성으로 모아질 수 없다는 사실에 공감했다.

“어쩌면 저는 이 영화를 저의 두 아들들을 위해서 선택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그들의 정서를 알 수 있거든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윤여정이 정 감독에게, 자신이 그의 할머니를 흉내내기를 바라느냐고 묻자, 정 감독이 그게 바로 자신이 바라는 바라고 대답하면서 감독과 배우의 의기투합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대본을 넘어서는 인물 묘사 창조의 자유에 가치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녀는 정 감독의 공감능력을 높이 샀다.

그녀는 오클라호마 주 털사에서 진행된 ‘미나리’ 촬영 첫날의 혼란스런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그녀는 정 감독이 그날 자신이 겪은 고통을 알았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나를 존중해주고, 내 걱정을 하는 걸 알았어요.”

그와는 대조적으로, 자신의 손자역을 맡은, 연기 경험이 별로 없는 아역배우 앨런 김과 찍은 여러 장면들은 자신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순간들이었다고 인정했다.

“나는 너무 비참한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해서 도대체 무얼 하겠다는 거지?”

그러나 그녀는 그 아역배우가 자신의 대본을 외우자 우려를 씻어내고, 감독의 직업 정신에 합류할 수 있었다.

윤여정은 연기 경력과 관련된 자의식을 언제나 철저한 준비로 대처한다.

“저는 학교에서 정통으로 연기를 배운 적이 없고, 영화를 배운 적도 없기 때문에 늘 열등감에 시달리지요. 그래서 저는 대본을 잡으면 열심히 연습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할리우드에서의 자신의 행로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녀는 인터뷰 동안 자주 사과를 했다. 자신의 입에서 나온 영어가 부자연스럽거나 퉁명스럽게 들렸을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영어가 자신의 앞길에 장애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만 주어진다면 기꺼이 노력할 준비는 되어있다.

“지나고서 생각해보면 모두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너무 의미 없는 배역에 괴로워했고, 대부분 사람들이 저를 싫어했어요. 그냥 다 관두고 미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녀는 살아남았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마무리 지었다.

“저는 여전히 살아있고, 드디어 연기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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