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인사이드] 유태인 대량 학살의 주범 히틀러도 유태인이었다?
[월드 인사이드] 유태인 대량 학살의 주범 히틀러도 유태인이었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1.02.21 07: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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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히틀러 유태인 학설' 추적해 보니...
아돌프 히틀러. 사진=연합뉴스 제공
유태인 유전자 설이 끊이지 않는 아돌프 히틀러. [AP=연합뉴스]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는 약 600만 명의 유태인들을 포함해서 수백만 유럽인들의 목숨을 빼앗은 살인 정권의 지도자였다. 그래서 히틀러의 개인 변호사였던 한스 프랑크가 1946년 처형되기 직전 히틀러에게 유태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폭로했을 때 세상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 여러 역사가들은 이 음모론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애를 써왔다. 히틀러는 정말 유태인이었을까? 아니면 한스 프랑크의 최후 주장은 악인의 단말마에서 나오는 헛소리였을까?

오스트리아 레온딩에 있는 히틀러의 유전 시절 집(Wikimedia Commons)
오스트리아 레온딩에 있는 히틀러의 유전 시절 집. [위키미디어]

 

아돌프 히틀러는 유태인이었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개인 변호사이자 폴란드 총독이었던 한스 프랑크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1946년 처형되었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953년 그의 회고록이 사후 출간되었다.

『교수대 위에서』라는 제목이 붙은 이 회고록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프랑크가, 수백만 유태인의 목숨을 앗아간 학살 주범 아돌프 히틀러에게 유태인의 피가 일부 섞여있다고 폭로한 것이다.

프랑크는 1930년 히틀러 자신의 명을 받고 그의 조상 가계를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프랑크에 따르면 히틀러의 이복 조카(이복형제의 자녀)가 히틀러가 유태인 혈통을 타고났다는 증거를 발견한 후 이를 히틀러를 협박하는 데 활용했다고 한다.

프랑크는 회고록에서 히틀러의 친가 쪽 할머니인 마리아 쉬클클루버가 오스트리아 그라츠의 한 유태인 가정에서 요리사로 일한 적이 있다고 썼다. 이때 쉬클클루버는 익명의 남자와 관계해서 임신을 하고 1837년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쉬클클루버(알로이스 히틀러)를 낳았다. 알로이스 쉬클클루버는 태어난 후 아버지를 모르는 사생아로 등록되었다.

히틀러는 나중에 1842년 마리아 쉬클클루버와 결혼한 남자인 요한 게오르크 히들러가 자신의 친가 쪽 할아버지라고 주장한다. 요한 게오르크 히들러는 1857년 사망함으로써 히틀러의 제3제국 주장에 큰 보탬이 되지 못했다. 나치 독일은 히틀러의 주장을 명백한 사실로 받아들였지만 많은 현대의 역사가들은 이를 놓고 이론이 분분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히틀러의 친가 할아버지가 누구인지는 명백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렇게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프랑크가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쉬클클루버의 아버지가 마리아 쉬클클루버가 요리사로 일했던 집 주인의 19살 난 아들 프랑켄버거 시니어라고 주장하고 나섰던 것이다.

프랑크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증거로 마리아 쉬클클루버와 프랑켄버거 시니어 사이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내세웠다. 프랑켄버거가 쉬클클루버에게 자녀 양육비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프랑크는 이 같은 근거를 내세워 히틀러의 할아버지가 실제로 유태인이었다고 주장했다. 그 말이 맞다면 히틀러는 유태인의 피가 1/4이 섞인 셈이다.

하지만 프랑크의 주장은 사실일까?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변호사 한스 프랑크는 회고록을 통해 히틀러는 일부 유태인의 피를 타고났다고 주장했다.(Wikimedia Commons)
아돌프 히틀러의 개인 변호사 한스 프랑크는 회고록을 통해 히틀러가 일부 유태인의 피를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위키미디어]

논란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우선, 전통적인 유태인 관습(율법)에 따르면 유태인 혈통은 모계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히틀러의 혈통이라고 주장되는 가계가 부계로 전승되었을 것이므로 그의 아버지가 유태인으로 간주되기 위해서는 그의 아버지는 유태인 전통에 따라 유태인으로 개종하는 의식을 치러야했을 것이다.(1980년대부터 등장한 훨씬 자유주의적인 유태인 운동에 따라 이 관습을 따르지 않는 유태인 단체들도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나치 독일 지도자들은 반유태인운동을 조장하기 위해 ‘Vierteljude(잡종을 뜻하는 독일어, 즉 유태인 피가 1/4이 섞여도 유태인이라는 의미)’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에 따라 조부모 중 한 명이라도 유태인이면 그는 유태인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히틀러 자신이 만든 원칙에 따라 히틀러도 유태인 피가 1/4이 섞인 명백한 유태인이었다.

그러다가 1950년대 니콜라우스 본 프레라도비히라는 독일 작가가 프랑크의 주장에 반기를 들고 나왔다. 프레라도비히는 ‘1856년 이전에 오스트리아 그라츠에는 유태인이 한 명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는 히틀러의 혈통과 관련해 프랑크의 말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혹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최근에 들어서는 2019년에 히틀러 유태인 음모론이 재부상했다. 심리학자인 레오나드 삭스가 ‘아돌프 히틀러의 할아버지는 누구인가?’라는 논문을 내놓으면서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유럽연구 학술지’를 통해 출간된 이 논문에서 삭스는, 프레라도비히의 주장과는 다르게, 자신이 오스트리아의 고문서 보관소에서 1850년 이전에도 그라츠에 유태인 공동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찾아냈다고 주장했다.

삭스의 논문에 따르면 임마누엘 멘델 바움가르텐이라는 사람이 유태인 출신으로는 최초로 비엔나 지방자체 위원에 뽑혔는데, 1861년 그는 슈타이어마르크(그라츠가 위치한 오스트리아 주) 총독에게 그 지역 유태인들에게 가해진 제재조치를 철회해달라고 청원했다고 한다.

바움가르텐은 1884년 『슈타이어마르크의 유태인 : 역사적 스케치』라는 책을 펴내고, 자신과 유태인 동료 몇 명이 1856년 슈타이어마르크 총독을 만났다고 주장했다. 또, 삭스의 논문에 인용된 ‘슈타이어마르크 시장들(mayors)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유태인들이 여러 지역들에 오랫동안 머물다가 영주권을 취득했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들의 회합이 있은 직후 그라츠에서 유태인 등록이 시행됐음은 명백해 보인다. 삭스는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1856년 그라츠에서는 유태인 공동체가 정식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그 결과 이 도시에 유태인 숫자가 증가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삭스는 그라츠에서는 1856년 이전부터 유태인들이 살았다고 주장한 것이다.

나아가 삭스는 프레라도비히가 나치 동조자였다는 증거를 제시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그가 히틀러가 유태인이라는 소문을 혁파하고자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버지가 유태인이라는 소문에 휩싸여있는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Wikimedia Commons)
아버지가 유태인이라는 소문에 휩싸여 있는 히틀러의 아버지 알로이스. [위키미디어]

히틀러의 유산에 대한 진실

만일 아돌프 히틀러가 유태인 혈통을 물려받았다면 그가 홀로코스트(유태인 대량학살)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와 관련해 삭스는 히틀러의 추정된 혈통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

“저는, 자신이 유태인이 아님을 입증해야 하는 절박한 필요성이 히틀러가 반유태주의에 더욱 집착하게 했던 한 요인이라고 믿습니다.”

삭스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러나 히틀러가 유태인이라는 음모론은 많은 역사가들에 의해 부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나온 레오나드 삭스의 연구 결과조차도 회의에 부닥치고 있다. 역사가 리처드 에반스 경은 그의 저서 『제3제국(3부작)』을 통해 삭스 연구 결과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아돌프 히틀러의 아버지인 알로이스가 태어나던 당시인 1830년대 그라츠에 유태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해도 이 사실만으로는 히틀러의 할아버지의 정체성에 대해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

에반스 경은 프랑크의 회고록 또한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악의적인 내용’을 품고 있다고 덧붙이며 이렇게 주장했다.

게다가 프랑크는 말년에 히틀러와 사이가 틀어졌으며, 나치에 부역한 혐의로 처형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악의적인 주장을 펴내도 그는 손해볼 것이 없었다.

이것뿐만 아니라 에반스는 히틀러의 할머니가 그라츠에 살았다는 당시대의 증거는 아무것도 없으며, 그 시기 프랑켄버거 가족이 그곳에 살았다는 증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반스는 프랑켄라이터라는 가족이 당시 그곳에 살기는 했지만, 그들은 유태인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또, 역사가 이안 커쇼도 1998년 『1889-1936 히틀러, 오만의 역사』라는 책을 펴내고, 알로이스가 태어났을 때는 히틀러의 아버지로 추정되는 프랑켄라이터 가족의 아들은 당시 겨우 10살에 불과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가족의 역사는 이 문제에 해답을 주지 못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돌프 히틀러가 유태인이었다는 결정적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악행이 남긴 유산을 생각하면 왜 이런 음모론이 수십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지를 이해할 수 있다.

“히틀러의 할머니는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히틀러의 파괴적 행동과 악행을 감안하면 이런 소문과 주장들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텔아비브 대학에서 동유럽 홀로코스트를 전공한 역사학자 하비 드라이퍼스는 이렇게 말했다.

“히틀러에게 개인적 동기가 숨어있지 않다면 그에게 깊게 자리 잡았던 살인적 반유태주의를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에반스 경은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히틀러가 저질렀던 끝모를 폭압에서 어떤 논리를 이끌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아무리 사실과 동떨어져 있던 간에, 히틀러의 유태인 설은 하나의 설명 근거가 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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