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인사이드] 경매에 나올 냉전 시대 소비에트 스파이 도구들
[월드 인사이드] 경매에 나올 냉전 시대 소비에트 스파이 도구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11.23 06: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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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의 자필 편지부터 립스틱 권총까지, 역사적 경매가 이뤄질 듯
‘피알카(Fialka)’라고 알려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암호해독기(KGB 스파이 박물관)
‘피알카(Fialka)’라고 알려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암호해독기(KGB 스파이 박물관)

캘리포니아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경매 전문 업체 ‘줄리엔 옥션’은 내년 초 수백 점의 냉전 시대 무기, 유물 등을 경매에 붙일 예정이다.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은 내년 1월 중순부터 2월 13일 사이에 약 400점의 물품들이 경매에 붙여지게 되는데, 그 중에는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물건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도했다.

“줄리엔 옥션은 매우 진귀한 냉전 시대 유물들을 경매 진행할 수 있게 되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줄리엔의 CEO 다렌 줄리엔은 성명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이번 경매는 희귀한 지난 시대의 무기들과 역사적인 유물들이 다량으로 출품된다는 사실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너무나도 놀라운 물품들이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립스틱처럼 생긴 권총과 카메라가 숨겨진 지갑에서부터 소비에트 시절의 도청 장치와 체 게바라의 고등학교 성적표까지 출품될 물품들은 다양한 방면에 걸쳐있다.

“뉴욕에 있는 ‘KGB 스파이 박물관’ 소장품부터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소 우주 경쟁 시대의 유물과 꽁꽁 숨겨져 있던 쿠바 혁명 유물까지 놀라운 경매 물품들은 지정학적, 경제적, 문화적 격동기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경매 물품 중 최고 관심거리는 ‘죽음의 키스’라 불리는 품목이다. 과학 전문 미디어 ‘IFL 사이언스’에 따르면 이 무기는 흔한 립스틱 모양의 4.5밀리 구경 단발 권총으로 1965년 KGB의 여성 스파이들에게 지급되었었다고 한다. 이 같은 제임스 본드 스타일의 도구들은 이 권총뿐만이 아니다.

경매 물품 중에는 1964년 호텔에 설치하도록 만들어진 도청 장치도 있으며, ‘불가리아의 우산’이라고 알려진 주사기 형 무기의 복제품도 있다. 1978년 구소련의 반체제인사인 조지 마르코프를 암살하는 데 사용되었던 ‘불가리아 우산’은 몰래 숨겨서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무기로 이번 경매에 출품된 모든 소비에트 스파이 도구 중 가장 눈에 띄는 물품이 틀림없을 것이다.

1978년 구소련의 반체제인사인 조지 마르코프를 암살하는 데 사용되었던 ‘불가리아 우산’(KGB 스파이 박물관)
1978년 구소련의 반체제인사인 조지 마르코프를 암살하는 데 사용되었던 ‘불가리아 우산’(KGB 스파이 박물관)

불가리아 출신의 작가이자 반체제인사였던 마르코프는 1968년 영국으로 이주했지만, 소련 통치 하의 경험을 자유롭게 저술하지는 못했다. 소비에트 당국이 유럽 전역에 방송을 통해 그의 목에 현상금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는 1978년 우산을 이용한 독극물 주입으로 암살당했다.

당시 마르코프는 런던의 워털루 브리지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허벅지 뒤쪽에 짧지만 강한 통증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보았을 때 그는 우산을 들어 올리며 택시를 잡기 위해 차도 건너편으로 달려가는 한 남자를 발견했을 뿐이다.

마르코프는 얼마 있지 않아 열이 오르자 스스로 병원을 찾았다. 4일 뒤 그는 리신(ricin) 중독으로 사망했다.

경매에 붙여질 다른 물품들 중에는 ‘피알카(Fialka)’라고 알려진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암호해독기가 있으며, 국경 경비대원들이 사용하던 밀입국자 추적 장치, 나치 독일군들이 사용하던 전화 도청장치, KGB 교도소 의무실 문(門) 등이 있다.

신망 있는 역사가 줄리어스 우르바이티스가 수집한 물품들 중에는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역사적으로 뛰어난 가치를 지닌 것들도 있다. 이러한 물품들에는 무인 월면차(MOON ROVER) 용 카메라에서부터 아폴로 7호 우주인 돈 아이셀이 입었던 나사 티셔츠까지 다양하다.

달 착륙 조작설을 신봉하는 음모론자들에게 무중력 모의 실험장치에서 우주복을 입고 있는 우주비행사 폴 와이츠와 브루스 맥캔들리스를 촬영한 16mm 필름 롤 1600피트는 경이의 대상이 될 것이다. 또, 사회 변혁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공산주의 시절의 유물에 끌릴 것이다.

1960년대 중반 KGB 여성 스파이들에게 지급되었던 ‘죽음의 키스’ 립스틱(Wikimedia Commons)
1960년대 중반 KGB 여성 스파이들에게 지급되었던 ‘죽음의 키스’ 립스틱(Wikimedia Commons)

사회주의 혁명의 격동기를 대표하는 유물로는 체 게바라의 고등학교 시절 성적표와 1958년 아바나 침투 계획을 상세히 기술한 피델 카스트로의 편지, 그리고 칼리닌그라드의 KGB 본부에 서있던 블라디미르 레닌의 1000파운드 무게의 석상 등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냉전 상황에서는 동서진영이 서로 으르렁거렸다. 서로 간에 가능한 많은 과학자와 정보요원들을 확보하는 일에서부터 악명 높았던 우주 경쟁에 이르기까지 이 시기가 뿜어내는 유물들의 역사적 가치는 실로 그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이다.

출품될 물품들은 뉴욕에 있는 ‘KGB 스파이 박물관’이 소장하던 것들이다. 이 박물관은 2019년 줄리어스 우르바이티스의 개인 박물관으로 개장했다가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문을 닫은 상태이다. ‘줄리엔 옥션’이 이 박물관 물품들을 경매 진행할 수 있는 것은 경매 업체로서는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장르의 경매가 다른 곳에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줄리엔 옥션’의 CFO 마틴 놀란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관심이 매우 높기 때문에 대대적인 후속 행사도 예정되어있습니다. 이 물품들은 그렇게 고가가 아니고, 흥미를 끄는 물건들입니다. 식사 자리에서 재미있는 이야기 소재로 사양될 수 있는 정도의 물건들입니다.”

대부분의 물품들의 예상가는 몇 백 달러부터 시작할 것이지만 ‘피알카(Fialka)’ 암호 해독기 때문에 12,000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 아무튼 여유가 있는 호사가들에게는 다가올 경매는 매혹적인 행사가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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