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 메시아의 실존을 입증하는 증거는 얼마나 있을까?
[히스토리] 메시아의 실존을 입증하는 증거는 얼마나 있을까?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9.13 05: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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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 수십 년 이내에 예수는 유대와 로마 역사가들을 통해 언급되다
바르샤바 서북쪽 340km 지점 폴란드 중부 마을 고르카 클라츠토르나의 17세기 수도원 부근에서 마을 청년들이 종려주일에 구경꾼들이 보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처형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AP=연합뉴스)
바르샤바 서북쪽 340km 지점 폴란드 중부 마을 고르카 클라츠토르나의 17세기 수도원 부근에서 마을 청년들이 종려주일에 구경꾼들이 보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처형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AP=연합뉴스)

다큐멘터리 전문 ‘히스토리 채널’은 웹사이트를 통해 역사적 예수의 실존을 입증하는 자료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아보았다. 아래 그 내용을 옮긴다.

수십억의 사람들은 나사렛 예수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라고 믿고 있지만,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가 존재했다는 사실조차를 부인한다. 2015년 영국 성공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성인 22%가 예수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신약성경을 연구하는 성서학자들 중에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미국 퍼듀 대학교의 도서관학과 교수이자 2015년 성서 바깥에서 찾아보는 예수의 실존 증거를 다룬 「성서고고학 검토(Biblical Archaeology Review article)」라는 책을 펴내기도 한 로렌스 마이카티욱은 ‘고대에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었다’고 말했다.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유대인 랍비들은 예수가 마술사나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존재라고 비난했습니다.”

마이카티욱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의 존재를 부정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관 중인 예수의 가시면류관(사진/AP=연합뉴스)
노트르담 대성당에 보관 중인 예수의 가시면류관(사진/AP=연합뉴스)

예수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의 실존을 입증하는 명확한 물리적, 고고학적 증거는 없다.

“결정적 증거는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카티욱은 이렇게 말했다.

“평범한 촌부(村夫)는 고고학적 증거를 남기지 않지요.”

“문제는 예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의 고고학 증거도 우리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종교학과 교수이자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 나사렛 예수에 대한 역사 논쟁」라는 책의 저자인 바트 D. 어만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이 남긴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고 해서 그 당시 그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지요. 당시 살았던 99.99%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그녀)도 아무런 고고학적 기록을 남기지 않았을 뿐이지요.”

예수 실존에 대한 의문은, 그가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 씌워졌다는 가시왕관이나 토리노의 수의 같은 그와 관련된 직접적인 유물을 둘러싸고도 계속되고 있다. 이 가시왕관의 한 형태는 현재 파리 노트르담성당에 보관 중이며, 토리노 수의는 예수의 주검을 둘러싼 수의(壽衣)로 예수 얼굴 형태가 드러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 이야기들이 거짓이 아님을 꾸준히 입증해오고 있다. 성서에는 예수가 어렸을 적 나사렛에서 자랐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러한 나사렛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고고학자들은 바위로 깎아 지은, 안뜰이 있는 어떤 집을 무덤들 및 우물과 함께 발굴해냈다. 그들은 또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최후 모습과 같은 로마 시대 십자가 처형의 물리적 증거를 찾아내기도 했다.

성경 이외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록에 의한 증거는 드물다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세세한 기록은 성서의 4복음서와 다른 부분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기록들은 기독교에 입각해서 기록된 것들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명백히 편견을 지니고 씌어졌으며, 이로부터 어떤 믿을만한 역사적 정보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매우 엄격한 잣대로 평가해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바트 D. 어만 교수는 이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성서 기록자들이 역사적 실존 인물로 바라본 예수에 대한 집중된 생각, 즉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디베료) 통치 시기 로마 총독 폰티우스 파일럿(본디오 빌라도)의 명으로 십자가에 처형된, 추종자를 많이 거느렸던 한 유대인의 모습은 편향된 시각을 지니기는 했어도 그의 사후 완전히 서로 다른 자료들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예수는 그의 사후 수십 년 이내에 유대와 로마의 역사가들이 남긴 기록에 언급되고 있다. 이 기록들은 예수의 삶과 죽음을 묘사한 신약성경의 구절들이 사실임을 뒷받침하고 있다.

고대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사진=Wikimedia Commons)
고대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사진=Wikimedia Commons)

고대 유대의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가장 최초로 성경 이외에서 예수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만 교수에 따르면, 서기 1세기의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단연코 서기 1세기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최상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요세푸스는 자신이 남긴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에서 예수에 대해 두 번 언급하고 있다. 「유대 고대사」는 유대인의 역사를 담은 20권이나 되는 대형 저작물로 서기 93년경 기록되었다.

예수가 처형되고 몇 년이 지난 서기 37년 정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요세푸스는 유대인 권문세가의 자손으로 유대의 군 지도자이기도 했는데, 서기 66~70년 사이 일어난 로마에 대한 유대인 1차 반란 시기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 사령관 자리에 있었다. 그는 예수의 추종자는 아니었지만 ‘초기 기독교 운동이 시작될 때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직접 보고, 들은 사람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마이카티욱 교수는 말했다.

「유대 고대사」 중 불법적인 처형을 기록한 한 대목에서 요세푸스는 이 희생자가 야고보라고 확인하고 있는데, 야고보는 ‘메시아로 불리고 있던 예수의 형제’라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마이카티욱 교수는, 이 짧은 기록의 진위를 의심하는 학자들은 거의 없지만 요세푸스가 기록한 보다 긴 구절, 즉 ‘플레비우스의 고백(Testimonium Flavianum)’ 부분을 놓고는 이론이 분분하다고 말한다. ‘플레비우스의 고백’에는 이적을 행하다가 빌라도에 의해 십자가형에 처해지는 한 사나이가 등장한다. 이 부분과 관련해서 마이카티욱 교수도, 기독교 필사가들이 이 부분을 변개(變改)하기는 했지만 통째 바꿔서 끼워 넣지는 않았다는 대부분 학자들의 의견에 동의한다.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사진=Wikimedia Commons)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사진=Wikimedia Commons)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예수를 본디오 빌라도에 의한 처형과 연관시키고 있다

예수의 실존을 기록한 또 하나의 사료는 1세기의 로마 역사를 기록한 「로마제국 연대기(Annals of Imperial Rome)」이다. 이 책은 서기 116년경 로마 원로원 의원이자 역사가였던 타키투스가 썼다. 그는 이 책에서 64년경 일어난 로마 대화재 사건을 기록하면서 네로 황제가 엉뚱하게 ‘기독교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방화 혐의를 뒤집어씌웠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당시 기독교도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악독한 행위를 일삼는 범죄자로 취급돼 미움을 받고 있었으며, 이 기독교의 창설자 크라이스투스(Christus)는 티베리우스(디베료) 황제 시대에 유대의 총독인 폰티우스 파일럿(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함께 기록하고 있다.

유대인이 아닌 로마의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네로가 기독교도들에 가한 박해를 논함에 있어 어떤 기독교적 편견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어만 교수는 말한다.

“그(타키투스)가 말한 모든 내용이, 기독교도들과 그들이 믿는 미신을 경멸하는 로마 작가의 시각에서 완전히 다르게 표출되었는데 이것이 성경 자체의 기록과 우연히도 일치하게 된 것입니다. 즉, 예수가 국가에 반역한 죄로 유대의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으며, 이 때문에 그의 추종자들에 의해 종교 운동이 일어났다는 기록을 말합니다.”

“타키투스는 역사를 기록할 때 신뢰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을 경우 보통 독자들에게 이 부분을 고지했습니다.”

마이카티욱 교수는 타키투스가 남기 기록의 역사적 가치를 보증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크라이스투스(Christus)를 거론한 부분에는 오류 가능성을 고지하는 지표 같은 것이 없습니다.”

예수의 실존을 입증하는 로마 시대의 또 다른 문서들

타키투스가 예수에 대한 기록을 쓰기 바로 전에 로마 총독 플리니 더 영거(Pliny the Younger)가 트리야누스 황제에게 초기 기독교도들이 ‘예수를 신으로 여기는 찬송가를 부르곤 했다’고 적어 보냈다. 또 일부 학자들은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크레스투스(Chrestus)’의 선동으로 끊임없이 말썽을 일으키는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쫓아냈다고 언급하는 부분에서 예수(크레스투스)를 언급한 것으로 믿고 있다.

어만 교수는, 비기독교들에게서 나온 이 같은 단편적인 자료들이 예수의 삶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역사를 천착(穿鑿)해야 할 의무가 있는 역사가들에게 예수가 인지되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아무도 그가 가공의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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