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이중언어 교육에 반대하다 중국의 탄압에 직면한 내몽골 소수민족
[월드 프리즘] 이중언어 교육에 반대하다 중국의 탄압에 직면한 내몽골 소수민족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9.10 06: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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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초등학생들이
몽골 초등학생들이 애국심과, 중국 가치를 강조하는 상반된 슬로건 사인 앞을 지나고 있다. [LA타임스]

LA타임스는 9일(현지 시각) 내몽골자치구 사람들이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처럼 언어·문화 말살 정책의 희생자로 전락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학부모들이 오후의 햇볕 아래에서 수십 명의 중국 경찰들과 검은 복장의 사복요원들이 노려보는 가운데 초등학교 1학년짜리 학생들의 손을 잡고 쇠창살이 박혀있는 학교 담을 따라 걷고 있었다. 학부모들이 차례대로 학생들의 손을 놓고 학교로 들여보내는 모습은 작년보다 더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목에 붉은 스카프를 두른 학생들이 금속 탐지기를 통과해서 교실로 이어진 계단을 오르는 모습을 나무 밑에서 지켜보던 한 할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서렸다.

“모든 민족들이 석류 열매처럼 단단히 한 데 뭉쳐야한다!”

학교 담장에는 시진핑의 주장이 이처럼 씌어져있었다.

“그들은 민족 단결의 위대함을 강조합니다. 이게 민족 단결의 모습인가요?”

이름 밝히기를 거부한 이 몽골 할아버지는 이렇게 불만을 이야기했다. 60대인 그와 그의 아내 오치르 바오는 손자가 억지로 수업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학교로 온 것이었다. ‘후허하오터 부속초등학교’는 대부분의 몽골 학생들이 다니는 수도에 위치한 초등학교이다.

그들의 손자는 이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확산되던 등교거부 운동에 참여했었다고 한다. 이 운동은 지난주 갑자기 내몽고 전 지역의 초등학교와 중학교들이 수업의 반을 몽골어에서 북경어로 전환해서 실시하겠다는 뉴스가 나온 다음 촉발되었다. 면적이 캘리포니아 주(州)의 두 배에 이르는 내몽골은 한때 유목민 전사들이 누비고 다니던 드넓은 초원지대로 칭기즈칸 후손들의 고향이다.

시행을 불과 몇 일 앞두고 발표된 새로운 이중언 교육 프로그램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수천 명의 교사들과 학생들, 학부모들이 온라인을 타고 빠르게 공유된 청원운동에 서명하고 나섰다. 그들은 주모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실명을 사발통문식으로 쓰고, 붉은 색의 지장을 찍었다. 또, 인기 있는 내몽고 연예 밴드들도 SNS를 통해 청원운동에 동참했다. 그리고 학부모들과 교사들은 집에서 몽골어로 수업을 가르치는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프로그램은 중국 정부가 몽골의 문화 정체성을 약화시키기 위해 가장 최근에 실시한 조치라고 비판을 받았다. 국경 지역인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에 내려진 조치와 흡사하다는 비난이었다. 티베트나 신장 위구르도 내몽골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으로 한족이 아닌 이민족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속한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남몽골 인권정보센터’는 내몽골 전역의 학교 안팎에서 ‘우리 모국어를 지키자’고 외치며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과 학생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경찰과 부딪히는 학부모들의 모습이 찍힌 수십 개의 동영상을 공유하고 있다.

한 동영상에서는 푸른색과 하얀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행진을 하다가 길에 멈춰 서서 서로 팔짱을 끼고 몽골어로 구호를 외치며, 둘러싼 군중들이 그들을 응원하며 따라하고 있다.

또 다른 동영상에서는 강요된 언어 프로그램을 거부하는 중학생들이 학교 입구에 쳐진 경찰 바리케이드를 밀고 나가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고 몇몇 동영상들에서는 도로에 서서 몽골어로 노래를 부르는 시위대가 등장한다. 시위대의 일부는 ‘나는 몽골인이다’는 구호가 울려 퍼질 때 눈을 감고 몸을 흔들기도 한다.

정부의 대응은 신속했다. 이번 주 후허하오터에서는 ‘내몽골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주변에 배치된 경찰차들과 정복 경찰 및 사복기관원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경찰들은 앞서서 일어났던 시위를 해산시켰다. 기사 첫머리에 등장하는, 조부모가 등교하는 손자를 지켜보았던 ‘후허하오터 부속초등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손자의 할머니 오치르 바오는, 손자의 부모들이 직장에서 해고 위협을 당하자 손자가 학교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당연히 손자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요. 하지만 모국어를 잃어버리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너무 잔혹한 처사입니다.”

그녀의 남편이 이렇게 끼어들었다.

“도대체 지금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건가요? 그들은 우리의 권리를 짓밟고 있습니다.”

안전을 위해 익명을 요구한 내몽골 경찰의 한 소식통은 LA타임스에 내몽골자치구 전역에 걸쳐서 보안당국에 일거리가 넘쳐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국이 지난 2주 동안 이 경찰관이 속한 관내에서만 하루에 몇 사람씩을 체포했다고, 그는 들려주었다. 그는 기자에게 경찰서에 내걸린 체포 명령서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저항 세력과 온라인으로 시위를 부추기는 사람들이 적힌 새로운 체포 명령서를 두세 시간마다 새로 받는다고 한다.

경찰은 이들 몽골인들의 집을 찾아가서 이중언어 교육 프로그램을 더 이상 반대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도록 하고 있다고 이 소식통은 알려주었다. 그는 사람들이 이 조치에 순응하지 않을 경우 붙잡혀가서, 중국 경찰 데이터베이스에 ‘핵심인물’로 기록된다고 말했다. ‘핵심인물’은 안보에 위협의 되는 존재로 집중적인 감시와 통제가 필요한 인물을 지칭한다.

“끔찍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도 무슬림들이 인도 뭄바이에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탄압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사진=뭄바이 AP=연합뉴스
인도 무슬림들이 인도 뭄바이에서 중국 정부의 위구르족 탄압 중지를 요구하는 시위를 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체포된 사람들 중에는 노인들과 임신부 및 중학생들도 있다고 그는 말했으며, ‘핵심인물’로 지목된 사람들은 평생 감시의 눈초리를 받으며 살아야한다고 말했다.

이 경찰관은 자신은 이런 검거 작전에 참여하기를 거부했으며, 학생들을 자녀로 둔 다른 많은 몽골 경찰들도 전적으로 업무 복귀를 거부하고 있다고 들려주었다.

“저는 몽골 사람입니다. 몽골 사람이 같은 몽골 사람을 탄압하면 안 되지요.”

그는 모국어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붙잡아 가야할 어떤 법적 근거도 없다고 덧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원칙을 지키며 살고 싶습니다.”

지난 수요일 내몽골 동부 지역의 몇몇 인민 보안담당국들은 ‘갈등을 부추기고 문제를 야기하는’ 혐의자들의 얼굴 사진과 이름들이 적힌 수배자명단을 배포했다. 중국에서는 반정부인사들과 변호사들 그리고 민주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애매모호한 죄목이 동원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 이들 반정부인사들에게는 여러 가지 죄목이 덧 씌어져서 5~10년까지의 법정최고형이 선고되는 일이 잦다.

이 얼굴 사진들은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을 감시카메라로 당겨서 촬영한 것처럼 보였다. 상당수 사람들이 길거리에 서있거나 휴대폰 불빛을 공중에 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현상수배 명단에는 ‘혐의자들’이 학교들 인근에서 발생한 시위에 참여했다고 적혀있었다.

이중언어 강요 프로그램은 많은 몽골 사람들이 이를 수십 년 동안 이어져온 문화 말살 정책의 최종 단계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분노와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남몽골 인권정보센터’의 엥헤바투 토고초그는 말했다.

중국에는 거의 600만 명에 이르는 몽골인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내몽골자치구의 몽골인들의 인구분포는 18% 정도에 머물면서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있다.

“몽골 사람들은 민족 정체성의 최후 보루인 언어가 이 새로운 정책 때문에 말살될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토고초그는 이렇게 말했다.

“몽골 사람들이 다급해진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언어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고, 존재 자체를 상실하게 될 것을 염려하는 것이지요.”

몽골 사람들은, 1960년대 문화혁명 당시 적어도 22,000명의 몽골인들이 살해당했고, 2000년대를 관통하면서도 말 많았던 ‘친환경 이주정책’으로 대량 이주의 희생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족과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해온 ‘모범 소수민족’으로 취급받았다. ‘친환경 이주정책’ 하에서 몽골 유목민들은 초원지대를 보호한다는 명목 하에 도시로 이주해야했다.

그리고 대부분 한족에 의해 주도된 광산개발 프로젝트들이 이전 목초지대를 점령해버렸다. 결과적으로 몽골어를 가르치던 많은 시골 학교들에서 학생들이 사라지자 학교들은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몽골 전문가 크리스토퍼 앳우드에 따르면, 오늘날 몽골어를 가르치는 학교에 출석하는 내몽골인들의 숫자는 1990년의 60%에서 30%를 간신히 넘어서는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도 몽골어 교육은 저항이 더 거센 소수민족인 신장이나 티베트에 비해 어느 정도 자유를 허락받아왔다. 신장이나 티베트에서는 카자흐어나 위구르어, 그리고 티베트어를 북경어로 대체하는 교육이 2000년대 초반부터 실시되어왔다.

그러다가 시진핑의 등장과 함께 상황이 바뀌었다. 시진핑의 통치 하에서 최근 중국 당국은 소수민족에 대한 ‘2세대(second generation)’ 접근법을 적용하고 있다. ‘2세대’ 접근법은, 한민족 문화에 동화되도록 유도하는 새로운 ‘용광로 정책’을 앞세우며, 그동안 상대적인 자치와 고유 언어의 유지 및 일정 지역에서의 문화 보존을 보장하던 오래된 소비에트 방식의 시스템을 배척한다.

공표된 이 정책들의 목표는 국가와 공산당에 대한 애국심 및 충성심 강화에 있다. 그러나 이 정책들은 강압과 겁박을 동원해서 시행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후허하오터에 있는 몽골 학교를 방문했던 LA타임스 기자는 사복기관원들에 둘러싸여 경찰차 안으로 끌려가야했다. 그들은 그녀를 경찰서 뒤 건물로 끌고 가서 심문을 하고, 정식으로 인가받은 언론인이라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소지품들을 압수했다. 그녀는 미국대사관에 전화할 수도 없었다. 한 경찰관은 양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끌고 가서 영창에 집어넣어버렸다.

기자는 4시간 이상을 구금당해있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이 지역을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었으며, 그녀 옆에는 3명의 정부 관리들과 1 명의 경찰관이 기차역까지 대동했다. 그들은 기차가 베이징을 향해 출발할 때까지 기차 차창 옆을 지키고 서있었다.

앞서서 기자와 인터뷰를 했던 경찰관은, 자신을 포함해서, 언어 교체 프로그램에 저항하는 몽골 사람들에게 더 안 좋은 일이 벌어질까봐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비슷한 조치들이 티베트나 신장에서 벌어졌음을 잘 알고 있으며, 중국 당국이 내몽골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현재의 사태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덧에 걸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

지난 화요일 아침 LA타임스 기자는 북경어로 수업하는 두 곳의 초등학교도 방문했다. 점심시간에 학생들을 데려가려는 많은 학부모, 할머니·할아버지, 베이비시터, 가정교사들이 교문 앞에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에 맞춰 일렬로 줄을 지어 교실 밖으로 나온 학생들이 웃고 떠들면서 길 건너 문방구로 달려가거나, 점심을 이용해 과외를 받기 위해 베이비시터나 친지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일부 한족 학부모들은 몽골 학교에서의 이중언어 프로그램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으며, 몽골어를 가르치는 과외는 없다고 말했다.

“그게 왜 필요한 거지요? 우리는 모두 중국사람 아닌가요?”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몽골 학교에는 보안요원들의 숫자가 부모들보다 많았다. 학부모들은 학생들이 경찰들을 통과해서 학교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말없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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