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테라포밍] 우리는 나이, 성별, 이름을 묻지 안습니다.
[메타 테라포밍] 우리는 나이, 성별, 이름을 묻지 안습니다.
  • 최현규 기자
  • 승인 2021.06.10 22: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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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테라포밍 @MetaverseNews DB
메타 테라포밍 @MetaverseNews DB

제가 즐기던 게임 중에 클래시오브클랜이 있습니다. 핀란드 헬싱키에 소개한 슈퍼셀이 개발한 게임으로, 15~30명 정도의 사용자들이 클랜(게임 속 팀)을 구성하여, 클랜 간 전쟁을 벌이는 게임입니다.

전쟁에서 이긴 클랜은 많은 아이템을 확보하게 됩니다. 확보한 아이템을 가지고 각 사용자는 자신의 마을을 성장시킵니다. 클랜전에 참가하지 않아도, 개인끼리 전쟁을 하면서 마을을 키울 수 있지만, 클래시오브클랜이라는 게임 타이틀에서 나타나듯이 이 게임의 백미를 클랜끼리 전쟁을 벌이는 클랜전입니다. 각 클랜에는 클랜을 대표하는 클랜장이란 직책이 있으며, 클랜장은 클랜전을 잘 계획하고, 클랜전에 멤버들이 활발히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합니다.

제가 클랜 멤버로 참여했던 클랜에는 50명의 구성원들이 있었습니다. 매주 한두 차례 다른 클랜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전쟁을 하다 보면, 예정된 전쟁에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혔다가 막상 전쟁이 벌어지면 전략없이 전쟁에서 빠지는 이들이 있습니다. 30대 30의 싸움인데. 몇 명이 빠지면 당연히 전세는 매우 불리해집니다. 또는 사전에 약속한 대로 공격을 하지 않고 개인 점수만 높이기 위해 무리한 공격을 하는 멤버들도 있습니다. 전쟁 때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다 보니, 전쟁이 끝나면 클랜 채팅창에는 특정 멤버를 비난하거나, 쫓아내자는 글들이 올라옵니다.

제가 활동했던 클랜에서 클랜장을 맡았던 이는 ‘비숍’이란 닉네임을 쓰는 분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채팅창에 이런저런 험한 말들이 오갈때마다 클랜장 비숍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멤버들에게 해명과 사과의 기회를 주고, 성난 멤버들을 달래는 식이었습니다.

어느 날, 클랜 멤버 한 분이 해외에 있는 법인에서 근무하는데 잠시 한국에 돌아오게 되었다면서 클랜 멤버들과 오프라인에서 만나고 싶다는 의견을 채팅창에 올렸습니다. 다른 멤버분은 자신이 큰 식당의 주방장이니, 자기가 일하는 식당으로 초대를 하고싶다고 했습니다. 클랜 멤버들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던 저도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른 멤버들도 채팅창에 모임을 갖자는 메시지를 많이 남겼습니다.

그런데 클랜장인 비숍님은 클랜 멤버들이 모이려는 시기에 본인은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시험기간이어서 시간을 못 낸다고 했습니다. ‘교사이신가 봐요? 어느 학교에 계세요?’라는 질문을 한 멤버가 올렸고, 비숍님은 ‘그게 아니라, 제가 중학생인데, 학교 시험 기간이어서 부모님께서 모임 참석 허락을 안 해주실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순간 제 머릿속에는 큰 종이 울렸습니다. 저는 막연히 비숍님을 제 또래의 남성이라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클랜 채팅창이 잠잠해진 것을 보니, 다른 멤버들도 저와 비슷한 충격을 받은 듯했습니다. 그렇게 흐지부지되어 오프라인 모임은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오프라인 모임 얘기가 나오기 전까지 우리는 상대방의 성별, 나이, 직업, 거주 지역을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수 십 명이 뭉쳐서 클랜전을 몇 달 동안 진행해왔습니다.

2019년 봄 빅데이터저널에 발표된 연구는 한 통신사에세 보유한 18,000명 고객의 통화정보(SMS,음성통화 관련 정보 등), 요금 기록 등을 가지고 사람의 성별, 연령을 맞출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결과를 보면 빅데이터 분석만으로 성별을 맞춘 비율은 85.6%, 나이를 맞춘 비율은 65.5%였습니다. 2020년 봄, 폴란드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온라인에서 주고받은 텍스트를 분석해서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작성자의 성별과 나이를 맞추는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

수백 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연령대(정확한 나이가 아닌 일정 연령 이상, 이하로 구분하는 정도)는 83.2%, 성별은 82.8%의 적중률을 보였습니다. 꽤 높은 적중률로 보이시나요? 여러분이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상대방의 성별, 연령대를 얼마나 정확히 알아채실까요? 앞서 연구가 보여준 60~80%대 보다는 훨씬 더 높은 적중률을 보이리라 예상합니다. 시각 정보만으로 대략적 판단이 가능하고, 여기에 대화까지 해보면 좀 더 깊게 예상이 가능합니다.

메타버스에서 우리는 행동, 글에서 전달되는 느낌만으로 상대의 인구통계학적 정보를 현실 세계에서보다는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챕터 3에서 얘기한 멀티 페르소나를 생각해봅시다. 나도 그렇지만 상대방도 메타버스에서는 현실 세계의 자신과 다른 모습을 드러냅니다. 시각 정보는 이미지나 아바타로 대체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막연히 예상한 상대의 인구통계학적 정보를 높게 신뢰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에서 상대의 나이, 성별을 그냥 물어보면 어떨까요? 메타버스의 주축인 Z세대는 그 안에서 서로의 신상정보를 묻지 않습니다. 그게 그 세계의 문화입니다.

이런 문화는 Z세대가 사용하는 용어에서 나타납니다. Z세대의 용어 중 ‘후렌드’란 말이 있습니다. ‘Who(누구와)+Friend(친구)’의 의미입니다. 그들은 메타버스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친구를 삼을 때 상대의 나이, 성별, 국적 등을 따지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서구 문화권에서는 우리에 비해 친구를 맺는 데 있어 나이차가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Z세대를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나이차에 대한 인식이 깨지고 있습니다.

‘다만추’란 말도 있습니다. 다양한 만남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Z세대의 나이, 성별, 국적 등에 관한 선입견 없이 다양한 사람과의 만남을 즐깁니다. 새로운 만남을 성장의 기회로 인식합니다.

메타버스에서 누군가와 만난다면, 상대의 나이와 성별에 아예 신경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당신이 그와 소통이 잘 된다고 느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상대의 신상을 알아야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신다면, 제가 소개하는 짧은 사례에 잠시 집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브 온라인(Eve Online)이라는 메타버스가 있습니다. 광활한 우주를 배경으로 자원을 채굴해서 경제 규모를 키우거나, 상대 진영과 우주 함선으로 전쟁을 치르는 방식입니다.

이브 온라인의 사용자인 Chappy78은 2020년 6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습니다. 생일 앞두고 있던 그는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생일을 특별하게 기념하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평소 즐기던 이브 온라인에서 거대한 전투를 하고 싶어서, 이런 내용을 이브 온라인 포럼에 올렸습니다.

생일날이 되자 그의 메시지를 본 수많은 사용자가 그가 얘기한 장소에 모였습니다. 좋은 아이템을 가진 사용자들은 그에게 멋진 마지막 전투를 보여주기 위해 고급 아이템을 아낌없이 쏟아부었습니다. 마치 불꽃놀이 같은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갑자기 몰려든 사용자들 때문에 메타버스에 과부하가 걸리자 운영진이 달라붙어서 문제를 해결해 줬습니다. 이날의 전쟁은 이브 온라인 메타버스의 가장 큰 전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채팅창에는 그의 생일을 축하하는 메시지가 넘쳤습니다. 이 전쟁에 참여했던 사용자들은 모금운동을 진행하여 Chappy78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모든게 현실세계에서 마주친 적 없던 이들, 서로의 나이, 성별 등에 관심 없는 이들이 같은 메타버스에 살던 이를 위해서 벌인 일입니다. 서로에 관한 인구통계학적 정보가 우리를 끈끈하게 만들어준다는 현실 세계의 고정관념이 메타버스에서는 잘 통하지 않습니다.

네덜란드 조직 인류학자인 호프스테더는 권력거리지수(PDI, Power Distance Index)라는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반론을 할 때 느끼는 심리적 저항 강도, 부담감 정도를 의미합니다.

즉, 권력거리지수가 높은 경우 우리는 상사, 교사, 나이 든 이에게 쉽게 무언가를 편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국가별로 권력거리지수를 조사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 결과 한국의 권력거리지수는 60점으로 OECD 국가들 중 네 번재로 높게 나타났습니다. 상사, 교사, 나이든 이에게 한국인들은 쉽게 자신의 의견을 내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메타버스는 우리가 느끼는 권력거리지수를 낮추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메타버스에서 가급적 다양한 이들과 친구가 되어서 소통의 폭을 넓히는 게 좋습니다.

[도움말씀=포스코경영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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