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 테라포밍] 그 세상도 내게는 피곤하다
[메타 테라포밍] 그 세상도 내게는 피곤하다
  • 최현규 기자
  • 승인 2021.06.10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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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테라포밍 @MetaverseNews DB
메타 테라포밍 @MetaverseNews DB

심리학자 스키너는 어떤 보상이 만족감을 높이는지 실험했습니다. 크게 보면 변동과 고정에 관한 실험입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에 글을 하나 올리면, 늘 1시간 내에 10개의 알림이 오는 경우와 몇 시간 내에 몇 개의 알림이 올지 모르는 경우, 둘 중 무엇이 우리를 더 설레게 할까요? 답은 후자입니다. 우리는 불규칙한 보상에 좀 더 빠져듭니다. 연리 2%가 확정된 예금 상품보다는 원금을 다 잃을 수 있는 주식 상품에 끌리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도박에 빠진 사람이 여러 심리적 문제 중 하나는 이런 불확실한 보상에 관한 집착입니다. 라이프로깅 메타버스인 페이스북에 새로운 글을 올린 후 어떤 기대를 하시나요? 당신이 올린 글에 대해 친구들이 댓글과 좋아요로 반응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글을 올리고, 회의에 들어갔을 때, 30분 정도 지나니 스마트폰에 페이스북 알림이 20개나 뜹니다. 평소에는 내가 글을 올리면 댓글과 좋아요가 10개 남짓인데,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알림이 20개나 뜨다니, 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앞서 스키너가 실험한 불규칙한 보상 형태로 라이프로깅 메타버스는 우리를 자극하는 셈입니다.

메타버스의 피드백은 현실 세계보다 매우 빠릅니다. 직장에서 승진을 하게 되었는데, 이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려서 받는 축하 피드백의 속도와 현실 세계의 동료와 가족들이 소식을 듣고 축하해 주는 속도, 전자가 압도적으로 빠릅니다.

메타버스에서 우리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 시스템과 소통하는 방식은 매우 빠른 피드백과 불규칙한 보상 구조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고, 이런 생각이 드는 경우가 있지 않으신가요? ‘왜 댓글이 빨리 안 붙지?’ 이것보다는 반응이 좋아야 하는데, 이 정도 반응이 다야?’ 현실 세계에서의 소통보다 우리는 메타버스에서의 소통에 더 큰 기대감을 갖는 면이 있습니다. 큰 기대에는 큰 실망과 피로가 따라오기 마련입니다. 앞서 얘기한 20개의 알림, 빨리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셨다면 이미 메타버스가 당신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코에이가 제작한 삼국지 게임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소설로 접했던 여러 장수의 모습과 함께 각 장수의 리더십(통솔), 무력, 지력, 정치력, 매력이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수치로 나타납니다.

운동경기 게임에서는 현실 세계의 선수들이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게임은 각 선수의 능력치를 수치로 표시해서 보여줍니다. 이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 운동선수들이 적잖다고 합니다. 축구선수 미키 바추아이는 축구게임인 피파에서 자신의 능력치가 낮게 설정되어 있는데 불만이 많았습니다. 피파게임 제작사인 EA스포츠에 자신의 능력치를 올려달라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여러 차례 의견을 냈습니다.

바추아이는 축구게임 속 자신 캐릭터의 능력치를 높이기 위해 축구를 열심히 하겠다는 농담을 포스팅하고는 실제 경기에서 엄청난 성적을 냈습니다. 마침내 EA스포츠는 피파게임에서 그의 능력치를 올려줬습니다.

만약 현실에서 우리의 머리 위나 가슴 부위에 우리의 능력치를 표시하는 숫자판이 붙는다면 어떨까요? 직장인의 머리 위에 기획력, 문서작성력, 리더십, 문제해결력 등이 수치로 표현되어 떠있다면 어떨까요? 디지털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메타버스에서는 모든 것들을 숫자로 표현하고 관리합니다.

우리가 메타버스 안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NPC와 소통할 때는 그런 숫자가 효율적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막상 내가 다른 이에게 숫자로 인식된다고 생각하면 참 불쾌합니다. 업무 고과, 성적 등 숫자로 나를 평가하는 상황도 유쾌하지 않은데, 그런 숫자를 내가 머리 위에 달고 다닌다고 생각하면 더 끔직합니다.

TV 드라마 ‘스카이 캐슬’, ‘부부의 세계’를 메타버스로 구현한다면, 각 등장인물의 머리 위에 어떤 능력치 항목을 달아주고 싶으신가요? 성적, 등수, 사랑, 믿음, 이런 것들이 생각나시나요? 숫자화하는 항목을 서로에 대한 인식의 폭을 매우 좁게 만듭니다. 누군가를 성적과 등수라는 항목으로 보는 순간 그 사람의 다른 특성은 관심에서 멀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항목을 숫자로 보는 순간, 숫자 1, 2 차이를 놓고 그 사람을 쉽게 단정하여 평가하게 됩니다. 메타버스는 소통의 효율성을 위해 많은 것들을 숫자화했으나, 더 넓고 깊은 소통을 저해하거나, 우리 모두를 몹시 피곤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도움말씀=포스코경영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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