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혁명] 사생활 판매 경제: 방학 일기는 안 썼지만, 브이로그는 꼭 한다
[메타버스 혁명] 사생활 판매 경제: 방학 일기는 안 썼지만, 브이로그는 꼭 한다
  • 이가영 기자
  • 승인 2021.06.10 10: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메타버스 혁명 @MetaverseNews DB
메타버스 혁명 @MetaverseNews DB

동영상을 뜻하는 비디오(video)와 블로그(blog)를 합친 개념이 브이로그(vlog)입니다. 유튜브,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일상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공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993년, 영국 BBC방송의 비디오 네이션이라는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이 자신의 일상을 찍은 영상을 보내주면 방송에서 보내줬는데, 이를 최초의 브이로그라 합니다.

지금처럼 브이로그가 대중에게 퍼지기 시작한 시기는 2010년대 중반부터입니다. 인터넷 속도가 비약적으로 빨라지고, 별도의 카메라 없이 스마트폰만으로 보기 좋은 동영상을 쉽게 찍게 되면서 브이로그 문화가 급속도로 퍼졌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는 자신의 모습, 다섯 시간 동안 독서실에 앉아서 공부하는 모습, 식당에서 밥 먹는 모습, 여행하는 모습 등, 예전 같으면 저런 특별하지 않은 영상을 누가 볼까 싶었던 주제들을 담은 콘텐츠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2018년과 대비하면 2019년에 유튜브 이용자들이 다른 사람의 브이로그를 검색한 횟수가 20배 넘게 증가했다고 합니다. 15~64세 인구의 45% 정도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영상을 찍고 있으며, 20~30대의 젊은 층을 중심으로 그런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업로드 하는 비율이 매우 높게 나타납니다.

하버드대의 제이슨 미첼 교수는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가를 실험으로 조사했습니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세 유형의 질문을 준비합니다.

1. 개인적 질문, “당신은 어떤 음악을 왜 좋아하세요?”

2. 타인에 관한 질문, “당신이 생각하기에 김상균 교수는 어떤 음악을 좋아할까요?”

3. 지식에 관한 질문, “올해 가장 많이 다운로드 된 음원은 무엇일까요?”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자신이 응답하고 싶은 질문을 선택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질문에 따라 받는 참가 보수가 달랐는데, 참가자들은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1번 질문을 선택할 경우 받는 보수가 가장 적었지만 1번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주로 고객에 관한 이야기, 경쟁 업체와 산업에 관한 정보를 이야기합니다. 학교에서는 이론으로 정리된 지식, 역사적 사실 등을 이야기합니다. 현대인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지만,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기회는 의외로 적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담은 브이로그를 공유하는 메타버스가 급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브이로그를 찍는 시간과 공간의 스펙트럼이 넓어질수록 브이로그에 관한 문제점도 많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첫째, 외부 공간에서 브이로그를 찍을 때 자신의 중심으로 영상을 기록해도, 그 배경에 타인의 모습이 함께 촬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 타인의 초상권을 침해하게 되고, 특히 영상에 함께 기록된 타인의 사생활이 의도하지 않게 공유되는 문제가 생깁니다.

둘째,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찍는 브이로그의 경우, 직장에서의 업무 활동이 노출되면서 기업의 업무 기밀이 외부에 알려지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직장에서 급여를 받고 일하는 시간인데, 그 시간에 하는 활동을 기록해서 개인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면, 근무 시간을 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는 셈일지도 모릅니다.

셋째, 타인의 자유, 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브이로그를 찍는 행위는 공익을 위한 공적 활동이 아닙니다. 그런데 도서관, 식당 등의 공공장에서 브이로그를 찍으면서 촬영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자리를 넓게 차지하고 다른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넷째, 브이로그를 소셜미디어에 공유해서 수입을 얻을 경우, 겸직 금지를 위반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달지’라는 채널을 운영하는 초등학교 교사 이현지 씨는 학교 교실에서 랩 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후 랩 하는 선생님으로 화제를 모았습니다. 조회 수가 300만 회를 넘었습니다. 이현지 선생님 외에도 브이로그를 올리는 교사들이 적잖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교사들이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얻는 행위는 겸직 금지를 위반한 것이니 처벌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이현지 선생님의 경우는 수익을 얻지 않았다고 본인이 해명한 후에도 겸직 자체가 금지라는 반박에 시달렸습니다. 논란 끝에 교육부에서는 ‘교원 유튜브 활동 복무지침’을 만들었고, 교육 관련 유튜브 활동을 장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기로 했습니다.

다만, 광고 수익이 발생하게 되면 겸직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기업의 직장인들의 경우는 소속된 기업마다 서로 입장이 좀 다릅니다. 수익을 올리는 겸직 활동이라며 강하게 제재하는 기업이 있는 반면에 아모레퍼시픽, LG전자 등은 직원의 브이로그 활동에 참견하지 않는 입장입니다.

노동법을 놓고 보면 브이로그를 통해 수익을 올려도 문제 될 소지는 별로 없습니다. 브이로그를 하느라 본업을 소홀히 하거나, 업무와 관련된 내용으로 앞서 얘기한 기업 기밀을 누출하는 등의 문제가 없다면 기업에서 뭐라고 이의를 제기할 근거는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윤리나 예의와 관련된 문제가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장례시장에서 브이로그를 찍던 손주가 가족들에게 혼나고 밖으로 쫓겨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손주는 할아버지를 보내는 마지막 날의 모습을 혼자 간직하고 싶어서, 기록을 남기고자 영상을 촬영했다고 합니다. 그런 기록을 남기는 게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이 언론에 보도되자, 장례식장에서까지 브이로그를 찍은 건 ‘선을 넘었다’라는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그 선은 어디쯤일까요? 그리고 그 선의 기준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가 궁금합니다. 조심스럽게 예측해보자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다양한 주제, 상황에서 브이로그가 기록되고 공유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른 이가 공유하는 삶의 기록을 왜 열심히 찾아보거나, 의견을 남길까요? 첫째, 정보를 얻고 싶어서입니다. 내가 취업하고 싶은 기업의 직장인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 내가 입학하고 싶은 대학교의 학생들은 어떤 모습으로 생활을 하는지 등이 궁금해서입니다.

둘째, 대리만족입니다. 호기심이 가고 원하는 마음이 있지만, 내가 직접 해보기는 어려운 활동을 하는 누군가를 보면서 거울을 보는 듯한 만족감을 얻습니다.

셋째, 공감과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감정, 누군가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고 싶어서입니다. 실제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의 48.6% 외로움을 많이 느끼지 않는다고 응답한 사람의 40.4%가 브이로그를 시청했습니다. 외로움을 많이 느낄수록 누군가의 브이로그에 좀 더 관심을 보이는 셈입니다.

우리는 라이프로깅 메타버스에 일상을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올렸던 내 일상 기록에 누군가의 피드백이 붙으면, 다시 그 기록을 읽게 됩니다. 나는 타인의 일상 기록에 피드백을 남기며, 누군가의 기록과 기억을 단단하게 붙잡아줍니다. 삶을 기억하고 되돌아보는 과정,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라이프로깅이 망각의 선을 넘어오고 있지는 않나 하는 우려가 듭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창조적 인간에게는 상기, 기억보다 망각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망각은 능동적,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식을 일시적으로 닫는 저지 능력이라 했습니다. 보다 고차원적이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일시적으로 의식의 자리를 백지상태로 비우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브이로그는 어쩌면 이런 망각, 능동적 백지화와는 반대의 길로 우리를 이끄는 듯 내 일상을 끊임없이 기록하고 다시 보며, 의식의 빈틈에는 다른 이의 일상을 담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보를 나누고, 대리 경험을 하며, 따듯한 공감과 소통으로 우리를 위로하는 활동이지만, 망각의 의미를 짚어준 니체의 조언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도움말씀=삼성경제연구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